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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내 마음대로 독후감] 일본소설 "몽환화" (부제: 내 노란 나팔꽃은 어디로 갔을까)

 

빚을 남기는자와 빚을 갚는자, 불행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남기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미 수십년 전의 사람에게 물어봐도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다. 
책을 덮고난 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 없다. 

 꽃에 대한 소재, 그것도 나팔꽃이라는 동화책에서나 볼 것 같은 소재를 들고온 히가시노에 대한 첫 인상은, 기대도 되었지만 걱정도 되었다. 최근의 나는 결심투성이 이지만 확실히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만족스러움을 느낀 적이 드물었고, 메스커레이드 호텔과 같은 그의 소설을 떠올리며 나도 이미 한 추리 한다는 자만심에 차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을 알면서도 때때로 주변환경에 의해 단정지어지거나, 내 가능성,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은 아닐까 라는 규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나님 처럼 전지적 시점으로 너라는 사람이 이렇다고 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는 너 자신은 이런 사람이다! 라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 나를 가장 잘 투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독서가 아닐까. 

이 책에 나오는 리노, 소타, 다카미 모두 젊은 또래의 빚을 떠안은 청년들이다. 빚이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금전적인 이미지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남긴다는 이미지에서 오는 긍정적인 느낌과 부정적인 느낌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느낌이 참 재미있다.

원자력이라는 사양산업군을 공부하는 소타, 잘나갔던 수영선수인 리노, 선대가 남긴 연구과제를 좇고 있는 다카미.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가 죽인 추리소설의 피해자와 피의자 캐릭터는 아니지만 이들에게 눈이 띄인 것은 비단 같은 또래라는 동질감이 아니라 선대가 남긴 빚을 갚아 나갈 사람들이라는 씁쓸함과 이를 받아들인 그들에 대한 경외심이다. 누군가가 벗어 놓은 해진 바지를 다시 입어야 하는 것만 같은 상황에 놓여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지를 더 찢어 그 구멍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어 모자를 만드는 듯하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 그것을 피하지 않을 용기가 그들에게서 그리고 몇 달 전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히가시노 작품의 장점은 캐릭터들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입체감이다. 선,악 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고등학교 1학년 떄부터 그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세상 따뜻한 위로와 소름끼치는 분노와 유쾌한 재미를 동시에 느껴왔다. 
문득 든 생각인데, 내가 사람들을 평면적으로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용서에 대해 관대해진 것도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비롯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작품의 매력은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나 자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인간에 대한 재조명,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지는 않는, 무심하고도 시크한 애정이다. 주로 내가 읽어온 소설은 범죄-> 범인 추적-> 범인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신파극 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류가 메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몽환화에서도 큰 틀은 가져가지만 결코 그것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범인을 감싸안을 변명과 따뜻함도 없다. 
게다가 역사라는 주제를 포함시키는 것이 출판사의 의도 였지만, 역시 히가시노는 본인의 스토리에 이것을 살짝 이용했을 뿐 휘둘리지 않되, 전체적인 뼈대 구축에 성공한 듯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고수의 실력일까.  큰 숲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물론 난 아직 애송이기에 눈 앞에 급급하고 실망하고 좌절한다. 

결국 머릿 속에 떠돌아 다니는 몽환적인 콘텐츠를 담아두기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다. 
일을 시작하면서 문맥에 대한 파악, 그리고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이 참 중요한데, 
그런의미에서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면.

 


"꽃이라고 다 화려하고, 갖고 싶은 것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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