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베스트셀러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다.
긍적적의미던 부정적인 의미던 책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례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은 청춘 그들 자체를 위로해주던 책이었지만 반대로 온 사회의 청년들을 "그래 지금 내가 아픈건 당연한거야."라고 안주하게 만드는 양날의 검 같은 것이었다.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 알게된 것은 대학 4-1학기 수업이었던 '사회학개론' 교수님께서 언급하시면서 부터였다. 당시 진행하고 있던 외부활동과 겹치면서 복잡해져있던 차에 대담하게도 "인간은 미움받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명제를 알게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했다. 잦은 환경의 변화로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미움받아서는 안되었다. 있는 힘껏 타인을 위해 살았고 그 속에 나는 없었다. 거짓이어도 겉보기에 착해보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의 선행으로 인한 보답이 다가올 때 내가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난 위선자가 아닐까?"
대학에 들어오고 조금씩 바뀌어가는 나를 알게되었다. 1학년 때 울면서 상담센터에서 나를 알아가고 나서 부터 나를 위해서 살아야 겠다고. 되돌아 보면 그 때부터 내가 하던 선행은 내 자신이 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뜨끔하던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남을 배려한다고 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자기중심적인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이론에 따르면)
이를 바꾸기 위해선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된다, 다른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으로 인식해라."
이부분이 아주 심오했다. 단순한 명제는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 남들이 무슨일을 하느냐에 따라 내 행동을 바꾸지 말고 그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고 보드담을 수 있을 것. 아들러는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내 안의 많은 것을 채우고 배워야함을 통감한다.
이 책의 메인 키워드인 용기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뒤따른다. 사실 이부분은 이론을 완성시키기 위한 비약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자유=해방감 이라면 철학자의 논리대로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남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 무례하게 비춰질 수가 있다. 비신사적, 비매너적.
최근 업무 매너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어디가 상석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예의바른 것이다 하는 내용을 배웠다.
이러한 매너는 물론 이 매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남의 눈을 신경쓰는 자유롭지 않은 자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매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진다.
결국 자유라는 것이 정의하기가 참어려운데 그저 환경에 관계없이 내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구속 속의 자유도 존재하고 자유 속의 구속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그저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 틀 속에 갇히고 싶어하지 않는 내 욕심이 불러 낸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막바지로 달려가는 이 책에는 이전 작성했던 '비긴어게인'의 리뷰와 일맥상통한다.
"현재를 살아라" "1.키네시스적 인생이 아닌 2.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살아라"
인생은 결국 점이다.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의미가 없다. 그냥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가 온다.
내 인생이 이미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기 때문에 복잡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1.정해진 목적을 향해 가는 운동
2. 실현해가는 활동. 실행되고 있는 동시에 존재라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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